외부 소리 자극이 없더라도 귓속이나 머릿속에서 기계 소음이나 바람 소리 등이 맴도는 경우가 있다. 이명(耳鳴) 증상이다. 내이(內耳) 질환이나 퇴행성 뇌질환 부작용일 수도 있다. 원인이 다양하고 불분명하여 치료법 역시 뚜렷하게 정립돼 있지 않다.
이를 디지털 치료제로 고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약물이나 주사 대신 스마트폰, 앱(App), 전기 자극 장치. VR(가상 현실) 등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을 말한다. 송재준 고대구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디지털 치료기 ‘소리클’로 이명 증상을 낮춘다. 양쪽 귀에 쓰는 헤드폰 장비 ‘소리클’은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미주신경과 연결된 귀 부위(외이분지)를 전기 자극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AI)으로 조절되는 전기 자극이 뇌 혈류와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켜 이명을 발생시키는 청각 피질 흥분을 가라앉혀주는 원리다. 송재준 교수는 “현재 초기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탐색 임상시험을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성인, 아이 가릴 것 없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역시 약물 대신 전기 자극 디지털 치료제가 쓰이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뉴로시그마는 이마에 붙이는 전기 패치로 뇌신경을 자극해 ADHD를 치료한다. 지난 2020년 세계 최초로 FDA 승인을 받았다. 이밖에 뇌졸중 환자 치료용 척수 자극 치료 기기를 개발한 리치뉴로, 빛과 소리로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신경 질환 치료 기기를 개발 중인 코그니토 등 전 세계 여러 기업이 디지털 치료제 영역을 키우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가 검증되고, 기존 약물치료나 침습적 시술 대비 독성과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작다는 데 있다. 신약 개발과 비교하면 개발 비용도 적고, 디지털 방식이다 보니, 치료 과정의 데이터 수집·분석도 수월하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은 디지털 치료기는 작년 기준 17건으로 전년(9건)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2건이 승인됐다. 식약처는 “국내 디지털 치료제도 불면증이나 중독 증상 완화 목적를 넘어 ADHD, 경도 인지 장애, 발달 장애, 시야 장애 등 다양한 질환에 적용이 시도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치료제 마인드스팀은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우울증을 개선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
규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 2월과 4월 승인된 불면증 개선제 ‘솜즈’와 ‘웰트아이’는 승인 후 반년이 된 지금도 시장에 공급되진 않고 있다. 식약처 검증을 마쳐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 기술 평가에서 다시 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개발자들은 “해외 기업들은 보건당국 허가가 떨어지면 수가 논의를 거쳐 곧바로 시장에 진입한다”며 “국내 신의료 기술 재평가 프로세스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